글번호
47247
작성일
2018.01.24
수정일
2018.01.24
작성자
김인아
조회수
303

동남아시아의 ‘베텔 씹기’ 문화


동남아를 방문하면 동남아인들이 무엇인가를 열심히 씹고 있는 모습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나뭇잎 뭉치로 보이는 것을 껌처럼 질겅이며 있는데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치아와 혀가 검붉게 변해있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입술과 턱 주변까지 검붉게 물들어 있어 그 모습이 자못 기괴하고도 생경한 인상을 준다.

이것이 바로 동남아의 대표적인 토착 문화인 ‘베텔 씹기(betel chewing)’ 문화이다. 베텔은 구장목(?醬木, betel vine) 또는 그 잎을 지칭하는 용어이나, 일반적으로는 구장 잎에 빈랑목(檳?木, areca palm) 열매 조각과 생석회, 향료 등을 넣어 둥글게 싼 씹는담배를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한다. 수 천년동안 지속되어온 베텔을 씹는 문화는 동남아의 다양한 역사문헌, 구전전승, 신화, 문학, 회화, 지방지 등에서 광범위하게 등장하고 있으며, 현대에도 대중문화로서 널리 자리매김하고 있다. 베텔에 들어가는 각종 재료는 마약성, 최면성 성분을 지니고 있어 일반 담배 이상의 강한 중독성을 띠고 있다.

동남아에서 베텔을 만드는 일반적인 방법은 구장 잎 표면에 석회반죽을 바른 후 그 위에 빈랑열매 조각이나 씨앗을 얹어 둥글게 싸는 것이다. 석회와 빈랑열매, 구장 잎이 베텔을 만드는데 빠지지 않는 기본재료인데, 이것은 대부분의 동남아 지역에서 자체적인 생산이 가능하다보니 베텔이 오랜 기간 지속적으로 생산될 수 있었다. 빈랑열매는 일반적으로 둥글거나 타원형이며 지름은 약 5센티미터에 달하는데 열매가 익기 전에는 단맛을 내나 익고 나면 쓴맛 또는 짭짤한 맛을 내는 특징이 있다. 이 열매를 얇게 저미거나 뭉떵하게 썰어내기도 하도 때로는 씨앗을 사용하기도 한다.

생석회는 조개와 같은 갑각류를 불에 구워서 망치나 손을 이용해 빻은 후 물과 섞어 만든다. 동남아 해안지역에서는 주로 달팽이 같은 연체동물이나 바다조개, 산호 등이 석회의 원료로 사용되는 반면 태국과 라오스, 베트남에서는 산에서 채취한 석회암을 갈아서 만든다. 필리핀에는 강이나 개울에 사는 갑각류나 홍합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렇게 만든 생석회 반죽은 쿠민(cumin) 열매나 심황이 첨가되어 붉은색을 띠게 된다. 이 외에도 지역에 따라 정향, 장뇌, 사향, 육두구, 후추, 생강 등의 향신료가 첨가되기도 한다. 둥글게 싸서 완성된 베텔은 정향가지를 사용해 덩이별로 묶어둔다. 풍미를 더하기 위해 계피, 고수풀, 용연향(龍涎香, ambergris)을 첨가하기도 한다. 이러한 각종 향신료가 침의 흐름을 자극하여 중독성을 일으키는 것이다.

동남아인들은 베텔을 치아와 볼 사이에 넣어 혀로 눌러서 덩이 속 액체를 빨아들이고 남은 것은 껌처럼 씹으며 즐긴다. 이렇게 몇 시간씩 씹거나 때로는 입에 물고서 잠을 자기도 한다. 베텔을 입에 넣어 씹으면 입안에서 상쾌한 기분과 청량감을 주기 때문에 동남아와 같은 열대지방에서는 널리 퍼진 기호식품이 되었다. 게다가 동남아인들은 베텔이 구취 및 구강 박테리아 감염의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한다. 베텔을 씹는 동안 내부 재료들이 서로 섞이면서 혀와 치아가 검붉은 색으로 착색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를 서양인들은 미개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16세기에 유럽인들이 동남아에 당도했을 때 많은 서양인 여행가들에 의해 작성된 기록물에서 하나같이 동남아의 베텔 씹기 관습을 ‘지저분하고 흉하며 역겨운’ 문화라고 멸시하기도 했으나, 동남아 전통시대의 여러 지역에서는 흑화(黑化)가 일어난 치아를 미적인 것으로 간주하였으며 동남아의 젊은 여성들은 이 붉은 색소를 미용의 목적으로 입술에 침착시키기도 했다.

베텔을 씹는 관습의 지역적 범위는 동서로 1,000km, 남북으로 6,000km에 달하는 범위를 포괄하며 동남아와 인도, 스리랑카 지역 전역이 여기에 포함된다. 서쪽으로 아프리카 연안지대와 마다카스카르가, 동쪽으로 멜라네시아와 티코피아, 북쪽으로는 중국 남부지역, 남쪽으로는 파푸아뉴기니 지역을 포함한다. 약리학자인 르윈(Lewin)은 세계 역사상 베텔과 같은 마약성 성분을 사용하는 관습이 지역적으로 가장 광범위한 분포를 나타내고 있는 곳이 동남아라고 설명할 정도로 베텔 씹기 관습은 동남아의 대표적인 토착문화인 것이다.

이렇듯 광역적으로 애용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남아에서의 베텔 문화에 관한 초기 일차문헌 사료는 불행히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중국 사료에서 기원전 2세기에 베트남에 퍼져있는 베텔 문화와 6세기 초에 인도네시아에서 성행한 빈랑열매의 사용에 관한 기록이 나타난다. 중국 당대의 사료에는 인도네시아로부터 빈랑열매를 수입해 왔다고 기록하며, 자바에서는 이미 15세기 초에 베텔을 씹는 문화가 존재했다. 이렇듯 베텔은 매우 광역적으로 애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베트남 남부지역에 건설되었던 초기 국가인 참빠(Champa)는 10세기와 11세기에 중국에 빈랑열매를 공물로 바쳤다고도 기록한다. 태국의 기록에서는 13세기에 ‘수코타이 사람들이 까친(Kachin)족의 행사를 기념하기 위해 빈랑열매를 내어왔다’는 문구가 발견되기도 한다. 중국 사료에서는 주로 11세기 이후 동남아 왕실에서 베텔을 즐겨 씹었다는 기록이 다수 존재한다.

초기 동남아의 베텔 문화에 관한 증거는 이곳을 방문한 서양인들의 기록을 통해서도 찾아볼 수 있다. 1598년 네덜란드 함대가 인도네시아 자바의 서부지역에 위치한 반뜬(Banten)에 도착했을 당시의 기록에는 ‘네덜란드인이 자바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베텔을 씹지 않는 자바인을 좀처럼 찾아볼 수 없었다. 베텔에 함유된 석회로 인해 자바인의 입안 전체는 붉은색으로 변했다. 또한 만약에 그들이 왕과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면 즉시 베텔 한 세트가 왕실 중앙에 비치되었다.’, ‘사람들은 배와 비슷하게 생긴 아레카(areca)라 일컫는 과일을 끝없이 씹었다. 그들은 이 과일을 베텔(betre)이라 불리는 나뭇잎에 싸서 석회와 섞어 먹었다. 그들은 이것을 씹은 후 뱉어버렸다’ 등의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한편 가장 오래된 빈랑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는 태국 서북부 지역에 위치한 땀피민(tham phi maen) 동굴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10,000년의 것으로 나타났다. 태국 반치앙(Ban Chiang)에서 발견된 베텔은 기원전 3,600년에서 기원후 200년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초기 베텔에 관한 또 다른 증거는 필리핀에 위치한 두용(Duyoung) 동굴에서 발견된 것으로 기원전 3,000년의 것으로 추산된다. 인도의 역사 문헌에는 베텔을 씹는 관습이 기원후 4세기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동남아가 인도보다 훨씬 일찍이 베텔을 씹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렇듯 동남아의 베텔 씹기 관습은 그 역사가 매우 오래되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베텔(betel)’이란 용어는 17세기에 포르투갈인에 의해 최초로 사용되었다. 영국의 식물학자 버킬(Isaac Henry Burkill)에 의하면 이 용어는 잎을 뜻하는 말레이 용어 ‘베틸라(vetila)’에서 유래되었으며, 빈랑을 의미하는 ‘아레카(Areca)’는 빈랑열매를 뜻하는 말레이 용어 ‘아다까(adakka)’나 인도의 ‘아다께야(adakeya)’에서 유래된 것으로 설명한다. 즉 베텔은 동남아 토착어를 라틴문자로 전사(轉寫)한 것으로 이것은 현지인들의 실제적 발음과는 거리가 먼 표현이다. 동남아의 각 지역에는 베텔을 나타내는 실로 다양한 용어가 존재하는데, 특히 이러한 용어의 다양성은 도서부 동남아에서 두드러진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의 경우 베텔은 발리어로 차낭(chanang), 자바어로 수롭(surob), 아체어로 라눕(ranub), 바딱어로 나뿌란(napuran) 등으로 부르며 일반적으로는 스리(sirih)로 통칭한다. 필리핀에서는 베텔을 따갈로그(Tagalog)어로로 뿡알릭모(bungalikmo), 깜빰빵안(Kampampangan)어로 루요스(luyos) 등으로 부른다.

동남아에서 베텔을 씹는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의 기호문제나 일상생활의 습관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적으로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다. 베텔은 사회적 교류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특정한 기념일이나 행사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동남아인들의 기호품이었고, 식민지 시대 이전에는 베틀은 손님을 접대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으로 제공되었다. 외국에서 온 외교사절단의 접대용으로도 베텔이 제공되었고, 남녀의 구애 용품, 법정 소송인의 패소의 상징, 사형수의 사형집행 직전에 제공되는 먹거리로도 베텔의 등장은 필수적이었다. 오늘날 담배가 등장하고, 바쁜 현대 생활 속에 베텔의 가치는 조금씩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동남아에서 베텔 씹기는 일상생활의 하나이며 지속되는 전통이다. 따라서 동남아인의 베텔 제공을 거부하거나 베텔 씹기를 권하는 것을 거절하는 행위는 매우 무례하고도 모독적인 행동으로 간주된다.

이런 의미에서 동남아에는 베텔이나 베텔의 재료를 담는 용기가 발달했으며, 각 가정에는 이러한 용기가 적어도 한 개 이상은 구비되어 있다. 초기 사료에는 동남아는 19세기까지 줄곧 높은 계급의 사람들이 외출 할 때에는 하인이나 노예를 대동해 그들로 하여금 베텔의 재료를 분리해서 보관하는 용기나 청동쟁반을 반드시 소지하고 있었다고 기록한다. 인도네시아 뜨르나떼(Termate)의 왕은 어린 시절에 장애로 인해 난쟁이가 된 여성들을 대동해 그의 베텔 용기를 항시 운반하게 했다.

동남아에서 베텔은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베텔은 종종 죽음과 연관되어 장례식장에서 필수품으로 등장하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빈랑열매와 구장 잎은 종종 장례식에서 망자와 함께 부장했다. 이것은 속세의 생을 마감하고 영원의 세계로 망자를 안내하는 역할을 한다. 베텔과 그 재료는 망자의 영혼을 위무하기 위한 공물로서 사용되기도 했으며, 성난 조상신들을 위무하거나 정령들의 도움을 호소하기 위한 봉헌물로 바쳐지기도 했다. 쌀과 함께 베텔은 동남아에서 망자와 정령을 달래는데 사용되는 대표적인 봉헌물인 것이다. 16세기에 필리핀 루손(Luzon)지역에서는 망자를 방부처리하기 위해 구장 잎을 짓이겨 짜낸 액체를 사용하기도 했다.

베텔은 결혼식과 같은 의례에 있어서도 중요한 요소로서 고려된다. 동남아의 다양한 민간전승이나 지방지 등에는 베텔에 관한 내용이 풍부하게 나타나는데, 특히 남성과 여성의 혼인과 관련된 내용들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의 전설에서 나타나는 쁘라똥(Prah Thong) 왕자는 뱀 공주와 결혼을 하는데 공주는 왕자에게 믿음의 증표로 베텔을 건네주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베텔은 캄보디아에서 신뢰와 결합의 상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전통적인 결혼식에서 베텔을 제공하고 이것을 받는 행위는 곧 남녀의 혼인이 성사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혼식에서 베텔의 재료는 주로 신부값의 일부로 주로 사용되며, 자바의 신랑 신부는 결혼식에서 구장 잎사귀를 서로에게 던진다. 말레이어로 뽀꼭 스리(pokok sirih), 아체어로 라눕동 (ranub don)이라 불리는 베텔 나무는 19세기 말레이와 수마트라의 결혼식에서 필수품으로 등장했는데 화려하게 장식된 베텔 나무가 결혼식장에 일렬로 나열되었다고 전한다. 오늘날에는 베텔 용기가 결혼식장에 필수품으로 전시가 되곤 한다.

또한 베텔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어휘들은 남녀의 결합을 의미하는 용어가 많은데, 예를 들어 빈랑열매를 의미하는 말레이어인 삐낭(pinang)은 오늘날 청혼, 구혼의 의미를 지닌다. 여기서 파생된 어휘인 메미낭(Meminang)은 청혼을, 삐낭안(pinangan)은 약혼을 의미한다. 구장 잎사귀 뭉치를 뜻하는 레꼬 빠씨꼬(Leko passiko)는 마까사르의 결혼식에서 제공된다. 빈랑 열매 한 동이를 뜻하는 칸막(Khan mak)은 타이족과 라오족 사회에서 결혼을 의미한다. 아체어로 ‘베텔을 가져오다’는 뜻의 바라눕(ba rnub)은 ‘애인에게 선물을 주다’는 의미이며, 마까사르어로 ‘커다란 구장 잎사귀’를 뜻하는 레꼬롬뽀(leko’-lompo)는 신부값을 의미한다.

동남아 여러 지역에서 나타나는 고대 전설에서는 베텔 상징주의가 성애를 다룬 문학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인도의 깜마수트라(Kama Sutra)에서 성행위를 위한 필수도구 목록에 베텔이 포함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동남아의 여러 지역에서도 베텔은 성행위와 관련된 상징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구장 잎과 빈랑열매의 결합은 남녀의 상보성, 균형성을 상징하며, 특히 동남아에서 우주의 속성을 볕(양, 남성)과 그늘(음, 여성)로 구분할 때 빈랑 열매는 볕에 해당하며 구장 잎은 그늘에 해당한다. 베트남에서는 구장 잎 넝쿨을 여성의 성기로, 빈랑 열매는 남성의 성기로 간주하며, 발리에서는 생석회를 남성과 여성의 성적 결합을 상징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동부지역에서 발견되는 긴 자루모양의 베텔 용기는 남성의 성기를 상징하며, 그 안에 담기는 구장 잎은 여성의 성적 이미지를 나타낸다.

뿐만 아니라 베텔은 출산 및 출생에 있어서도 중요한 상징물로 고려된다. 띠모르 지역에서 산모가 베텔을 씹는 것은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어 필수적인 행위로 간주되는데, 이때 붉은색으로 변한 침은 혈액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것이 태아에 공급된다고 믿기도 했다. 띠모르의 마까세인은 신혼 첫날밤 신랑의 어머니가 부부와 함께 베텔을 씹었으며, 손자가 태어나면 며느리와 시모가 함께 손자의 탄생을 기리기 위해 베텔을 씹었다고 전한다. 비슷한 경우로 말레이의 전통사회에서는 임신의 성공을 위해 베텔 잎을 즙을 내어 먹는다거나, 불임 여성의 질에 빈랑열매조각을 집어넣는 등의 행위를 하기도 한다.

이렇듯 동남아에서 베텔을 씹는 관습은 오랜 역사를 자랑할 뿐만 아니라 개인의 기호나 습관의 차원을 넘어서서 사회적으로도 중요한 함의를 지니고 있으며 현대에까지 지속되고 있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토착문화인 것이다.


*작성: 동아대학교 김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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